푸치니 《나비부인》 중 <Humming Chorus>|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합창이 밤의 시간을 들려주는 순간
핵심 내용
- <Humming Chorus>의 원제는 <Coro a bocca chiusa>, 곧 '입을 다문 채 부르는 합창'입니다.
- 초초상은 돌아온 배를보고 핑커턴을 밤새 기다리지만, 관객은 그녀의 희망이 곧 무너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 푸치니의 가사 없는 무대 밖 합창과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겹쳐, 평온한 밤과 피할 수 없는 비극을 동시에 들려줍니다.
목차
1. 이 음악이 흐를 때 무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1. 이 음악이 흐를 때 무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비부인》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누군가가 소리치는 순간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밤일지 모릅니다.
미국 해군 장교 핑커턴이 일본을 떠난 뒤, 초초상은 3년 동안 그의 귀환을 믿고 살아갑니다.
어느 날 나가사키 항구에 핑커턴의 군함 에이브러햄 링컨이 들어옵니다.
초초상은 정원에 꽃을 뿌리고 아이와 함께 단장한 뒤, 그가 언덕길을 올라오기를 기다립니다.
해는 지고 밤이 깊어지지만 핑커턴은 오지 않습니다.
이때 무대 밖에서 들리는 것이 <Humming Chorus>입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교육 자료도 이 대목을 초초상의 '말없는 밤샘 기다림'을 동반하는 음악으로 설명합니다.
| 구분 | 내용 |
| 작곡 |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
| 오페라 | 《Madama Butterfly》, SC 74 |
| 이탈리아어 제목 | Coro a bocca chiusa |
| 우리말 뜻 | 입을 다문 채 부르는 합창 |
| 극 중 위치 | 초초상이 핑커턴을 밤새 기다리는 장면 |
| 연주 형태 | 무대 밖의 가사 없는 합창과 오케스트 |
| 핵심 대비 | 끊어지는 피치카토와 길게 이어지는 허밍 |
공연본에 따라 이 음악을 2막의 끝으로 보기도 하고,
2막에서 3막으로 넘어가는 경계로 보기도 합니다.
《나비부인》이 초연 뒤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막의 구분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반마다 'Act II' 또는 'Act-II-III의 연결부'처럼 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2. 왜 합창인데 가사가 없을까
오페라에서 합창은 대개 군중의 생각을 말하거나 사건의 규모를 키웁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합창은 인물도, 설명자도 아닙니다.
입을 다문 채 허밍만 이어갑니다.
그 결과 목소리는 '누가 하는 말'에서 벗어나 밤의 공기처럼 무대 전체에 퍼집니다.
초초상의 마음을 직접 대변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배경음으로만 물러서지도 않습니다.
희망에 붙잡힌 사람의 숨,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 잠들지 못한 밤의 정적이 한꺼번에 겹쳐 들립니다.
이 선택은 작품의 연극적인 배경과도 연결됩니다.
푸치니가 런던에서 본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연극에는 조명 변화만으로
초초상의 밤샘 기다림을 보여주는 긴 무언 장면이 있었습니다.
LA 오페라의 해설에 따르면 푸치니는 그 침묵의 효과를 오페라로 옮기고자 했고,
무대 밖의 말 없는 합창으로 그 시간을 음악화했습니다.
말을 없앴기 때문에 감정이 비어 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객이 그 침묵 안에 자신의 예감을 채워 넣게 됩니다.
3. 평온하게 들리는데 왜 슬플까
이 곡을 장면과 떼어 듣는다면 부드러운 자장가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의 앞뒤를 알고 들으면 같은 선율이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초초상은 핑커턴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반면 관객은 그의 귀환이 행복한 재회를 뜻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합니다.
무대 위 인물의 희망과 객석의 불안 사이에 생기는 거리
바로 그 거리가 이 음악의 슬픔입니다.
음향의 대비도 그 거리를 넓힙니다.
- 현악기의 피치카토는 음과 음 사이를 잘게 끊으며, 멈추지 않는 시계처럼 밤의 시간을 셉니다.
- 합창의 허밍은 그 위를 길게 이어가며, 시간이 멎은 듯한 느낌을 만듭니다.
- 중간에 떠오르는 독주 바이올린은 따뜻하지만, 지나간 사랑의 기억처럼 홀로 남습니다.
- 마지막으로 갈수록 소리는 멀어지고, 기다림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새벽으로 넘어갑니다.
메트 오페라의 안내 자료는 피치카토 현과 길게 이어지는 합창의 음색 차이를
이 대목의 핵심 감상 요소로 짚습니다.
그러나 이 대비를 단순히 '반주와 선율'로만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쪽은 앞으로 가는 현실의 시간이고,
다른 한쪽은 같은 믿음에 머물러 있는 초초상의 시간이라고 들어도 좋습니다.
이 음악은 기다림을 위로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만 시간이 멈춘 밤을, 아주 아름답게 보여줄 뿐입니다.
4. 세 번 다르게 듣는 감상법
첫째, 합창만 따라가 보세요.
가사가 없으므로 단어의 뜻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소리가 어디에서 부풀고 어디에서 가늘어지는지만 따라가도 긴 호흡이 느껴집니다.
합창이 무대 밖에서 울릴 때는 목소리의 주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특정 인물의 노래라기보다 밤을 채우는 공간처럼 다가옵니다.
둘째, 피치카토를 들어보세요.
허밍의 부드러움 뒤에서 현악기가 짧은 음을 하나씩 놓습니다.
이 작은 움직임을 따라가면 곡이 마냥 느리고 정지된 음악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초초상의 마음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밤은 고요하게 새벽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셋째, 음악이 끝난 다음을 생각해 보세요.
초초상에게 이 밤은 재회를 앞둔 기다림입니다.
관객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허물어지기 직전의 유예입니다.
같은 음악을 무대 위 인물과 객석의 관객이 전혀 다른 의미로 듣는 셈입니다.
이 어긋남을 알고 나면 아름다운 마지막 화음도 완전한 안식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독립된 합창곡 음원과 오페라 전막의 장면을 한 번씩 비교해 보세요.
전자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후자는 그 아름다움이 왜 아픈지를 들려줍니다.
☞ Madama Butterfly: Humming Chorus
☞ Madame Butterfly. Coro a boca cerrada. Puccini.
5. 오늘의 관객이 함께 생각할 점
《나비부인》은 20세기 초 유럽이 상상한 일본을 무대로 합니다.
푸치니는 일본 선율과 악기의 색채를 연구했지만,
작품에는 당시 서구의 이국 취향과 제국주의적 시선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 점을 지운 채 이 작품을 '순종적인 여인의 아름다운 희생'으로만 감상하면
초초상의 비극을 지나치게 낭만화할 수 있습니다.
핑커턴에게 결혼은 가볍게 끝낼 수 있는 체험이지만,
초초상에게는 가족과 종교, 삶의 기반을 모두 건 선택입니다.
두 사람의 기다림이 애초부터 같은 무게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Humming Chorus>의 고요는 바로 그 불균형을 가립니다.
음악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홀로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
<Humming Chorus>에는 기억하기 쉬운 가사도,
성악가의 화려한 고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합창은 《나비부인》에서 가장 긴 시간을 느끼게 합니다.
피치카토는 밤을 한 걸음씩 새벽으로 밀어가고,
허밍은 초초상을 같은 자리에 붙잡아 둡니다.
우리는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을 함께 바라보면서도,
그 기다림이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이 곡의 아름다움은 편안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평온한 표면 아래에 희망과 불안, 사랑과 착취, 멈춘 마음과 흐르는 시간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말 없는 합창이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밤은 설명보다 숨소리에 가깝고,
어떤 기다림은 가사를 붙이는 순간 오히려 작아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