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현악4중주 15번 A단조, Op.132> 3악장|다시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음악
핵심 내용
- 베토벤은 1825년 심한 병에서 회복한 뒤 3악장에서 '병에서 회복한 사람이 신에게 드리는 거룩한 감사의 노래'라는 표제를 붙였습니다.
- 느린 리디아 선법의 찬가와 '새로운 힘을 느끼며'라고 적힌 밝은 안단테가 번갈아 나타납니다.
- 이 악장의 감사는 환희의 외침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한 사람이 생명을 다시 바라보는 깊고 조용한 경외에 가깝습니다.
목차

1. 병상에서 태어난 감사의 노래
<현악4중주 15번 A단조>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갈리친 공작이 의뢰한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토벤은 1825년 초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4월 심각한 장 질환으로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죽음을 걱정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던 그는 5월 말부터 회복하자,
원래 구상에 없던 긴 느린 악장을 작품 한가운데에 추가했습니다.
| 구분 | 내용 |
| 작품 | 현악4중주 15번 A단조 |
| 작품번호 | Op.132 |
| 작곡 | 1825년 |
| 편성 | 바이올린2·비올라·첼로 |
| 전체 구성 | 5악장 |
| 3악장 | Molto adagio-Andante |
| 연주 시간 | 대략 15~20분 |
| 핵심 표기 | Neue Kraft fühlend |
3악장 악보에는 베토벤이 직접 적은 긴 독일어 표제가 있습니다.
Heiliger Dankgesang eines Genesenen an die Gottheit, in der lydischen Tonart
우리말로 옮기면 '병에서 회복한 사람이 신에게 드리는 거룩한 감사의 노래, 리디아 선법으로'입니다.

당시 베토벤은 연주를 직접 듣기 어려울 만큼 청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가 네 악기의 소리를 오직 내면으로 상상하며
이토록 투명한 감사의 음악을 썼다는 점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 베토벤 <현악4중주 15번 A단조, Op.132> 3악장 악보(imslp.org)
2. 리디아 선법은 무엇인가
리디아 선법은 장음계와 비슷하지만 네 번째 음이 반음 높아진 오래된 교회선법입니다.
이 악장에서는 F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Bb 대신 B음을 사용합니다.

그 결과 음악은 밝은 장조처럼 들리면서도 완전히 익숙한 곳에 정착하지 않습니다.
현실보다 조금 멀리 떨어진 듯한 신비롭고 투명한 색채가 생깁니다.
베토벤은 과거 교회음악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선법을 통해 병상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와,
자신보다 큰 존재 앞에 선 인간의 겸허함을 표현했습니다.
리디아 선법과 무언의 찬가가 경건함과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는
미국 의회도서관의 해설도 있습니다.
3. 감사와 회복이 교차하는 구조
3악장은 느린 감사 찬가가 세 차례, 비교적 활기찬 안단테가 두 차례 등장하는 구조입니다.
느린 부분은 Molto adagio로, 네 연주자가 긴 음을 주고받으며 합창처럼 연주합니다.
각 악기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기보다 하나의 숨을 함께 쉽니다.
그러다 3/8박자의 D장조 안단테가 시작되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베토벤은 이곳에 Neue Kraft fühlend, 즉 '새로운 힘을 느끼며'라고 적었습니다.
리듬은 가볍게 움직이고 선율은 햇빛을 받으며 밖으로 걸어 나가는 듯합니다.
병상에서 처음 몸을 일으켰을 때 느끼는 기쁨처럼 소박하지만 생생합니다.
마지막 찬가에는 Mit innigster Empfindung, '가장 깊은 내면의 감정으로'라는 지시가 붙습니다.
처음과 비슷한 음악이지만 이제는 단순한 안도감이 아니라,
삶을 다시 얻었다는 깨달음으로 들립니다.

4. 구간별 감상 포인트
1) 첫 번째 감사 찬가- 숨을 고르는 시간
긴 화음 사이의 침묵을 들어보세요.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한 번의 호흡을 오래 바라봅니다.
2) 첫 번째 안단테 - 새로운 힘을 느끼며
박자가 4/4에서 3/8로 바뀌며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네 악기가 서로 힘을 건네는 듯한 움직임에 주목해 보세요.
3) 두 번째 찬가 - 더 깊어진 감사
처음의 찬가가 돌아오지만 성부가 더욱 촘촘해집니다.
회복 이후 같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을 느껴보세요.
4) 마지막 찬가 - 가장 깊은 감정으로
음악은 거대한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네 악기의 목소리가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가 된 뒤 평온하게 가라앉습니다.
회복은 고통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이전과 다르게 느끼는 일입니다.
☞ Danish String Quartet plays Beethoven quartet no. 15 in A minor, op. 132, 3rd mov. (Molto adagio)
☞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 작품 132의 3악장] 텅 빈 객석에 울려퍼진 경기 예술인 희망의 연주 코로나19 감염증 극복 #새로운경기 #경기아트센터
마무리
요한 요한손의 <Flight from the City>가 익숙한 삶을 떠나 새로운 빛으로 걸어가는 음악이었다면,
베토벤의 이 3악장은 그 빛 속에서 다시 숨 쉬고 있음을 깨닫는 음악입니다.
이 악장은 병이 모두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느린 찬가 사이로 힘이 돌아왔다가 다시 고요해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이 음악이 건네는 위로는 현실적입니다.
완전한 회복을 기다린 뒤에야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조금 숨이 편해지고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는 사실부터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