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Tod und Verklärung, Op.24>
- 병상의 희미한 맥박이 찬란한 빛으로 바뀌는 순간
핵심 내용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20대 중반이던 1888~1889년에 한 인간의 임종과 영혼의 변용을 그린 교향시 <죽음과 변용>을 작곡했습니다.
- 음악은 병상에서의 고통, 죽음과의 투쟁, 지나온 삶의 회상, 마침내 찾아오는 변용이라는 네 단계로 전개됩니다.
- 어두운 C단조에서 출발한 음악이 마지막에 찬란한 C장조로 변화하는 과정이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목차

1. 스물다섯 살의 작곡가가 상상한 죽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가 <죽음과 변용>을 완성한 것은 1889년입니다.
당시 그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작곡가였으며, 죽음을 앞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건강한 젊은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 인간의 내면을 음악으로 그렸습니다.
작품은 1890년 6월 21일 독일 아이제나흐에서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바그너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반음계적 화성과 극적인 관현악법이
이 작품에 미친 영향도 자주 언급됩니다.
| 구분 | 내용 |
| 작품명 | Tod und Verklärung |
| 우리말 제목 | 죽음과 변용 |
| 작품 번호 | Op.24, TrV 158 |
| 작곡 시기 | 1888-1889년 |
| 초연 | 1890년 6월 21일, 아이제나흐 |
| 형식 | 단악장 교향시 |
| 연주 시간 | 약 24~26분 |
| 조성의 흐름 | C단조에서 C장조로 |
| 감상 핵심 | 죽음과의 투쟁이 변용의 빛으로 바뀌는 과 |
▶ '변용(Verklärung)이란?
'변용'이란 단순히 겉모습이 바뀐다는 뜻이 아닙니다.
독일어 Verklärung은 고통과 죽음을 지난 존재가
더 밝고 숭고한 상태로 변화하거나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라기보다,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이루지 못한 이상이 완성되는 과정으로 그려집니다.
2. 리터의 시와 네 단계의 이야기
이 작품에는 슈트라우스의 친구였던 시인 알렉산더 리터(Alexander Ritter)의 시가 함께 소개됩니다.
그러나 리터의 시를 읽고 슈트라우스가 음악을 작곡한 것은 아닙니다.
음악이 먼저 완성된 뒤, 슈트라우스가 작품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시를 리터에게 부탁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특정 문학 작품을 그대로 옮긴 음악이라기보다,
슈트라우스가 먼저 구상한 장면에 시가 덧붙여진 경우입니다.
음악의 내용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병상에 누운 사람의 불안정한 숨과 희미한 맥박
다가오는 죽음에 맞서는 격렬한 투쟁
어린 시절과 사랑, 이상을 돌아보는 삶의 회상
육체적 고통을 벗어나 더 높은 세계로 이동하는 변용
슈트라우스가 그런 죽음은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루지 못한 이상까지 품은 채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긴 과정에 가깝습니다.
3. 불규칙한 맥박에서 변용의 빛까지
곡은 조용한 Largo로 시작합니다.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짧고 불규칙한 음형을 반복하고,
팀파니가 간헐적으로 낮은 소리를 냅니다.
규칙적인 박자라기보다 잠들지 못한 환자의 흐트러진 호흡과 약해지는 맥박처럼 들립니다.
잠시 평온한 선율이 나타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자 음악은 Allegro molto agitato로 돌변합니다.
금관악기와 현악기가 날카롭게 충돌하고, 리듬은 거칠게 밀려옵니다.
격렬한 투쟁이 가라앉으면 음악은 지나온 삶의 기억을 하나씩 펼쳐 보입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 청춘의 열정, 사랑, 그리고 끝내 완성하지 못한 이상이
서로 다른 선율로 스쳐 지나갑니다.
마침내 탐탐의 어두운 울림과 함께 육체의 싸움이 끝납니다.
그러나 음악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낮은 음역에서 시작된 변용의 주제가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두 대의 하프와 관현악 전체가 빛나는 C장조의 울림을 만듭니다.
마지막은 승리의 함성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공간이 천천히 열리는 순간처럼 들립니다.
4. 전곡으로 듣는 감상 포인트
다음 시간은 약 25분 연주를 기준으로 한 대략적인 안내이며 지휘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1) 0:00 ~ 6:00 병상의 밤
현악기의 엇갈린 리듬과 팀파니를 들어보세요.
선율보다 숨과 맥박을 연상시키는 음향이 중요합니다.
2) 6:00 ~ 12:00 죽음과의 투쟁
관현악이 갑자기 폭발합니다.
짧은 동기들이 충돌하고,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과 그것을 가로막는 힘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3) 12:00 ~ 18:00 지나온 삶의 회상
격렬함이 가라앉으며 여러 선율이 나타납니다.
같은 사람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사랑, 이상을 서로 다른 표정으로 돌아보는 장면입니다.
4) 18:00 ~ 끝
탐탐의 울림 뒤에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변용의 주제가 낮은 음역에서 시작해 관현악 전체로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세요.
C단조의 어둠이 C장조의 빛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 R. Strauss: Smrt a vykoupení • Tod und Verklärung (24 GoPro kamer v orchestru)
5. 실제 죽음과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죽음과 변용>은 젊은 슈트라우스가 상상한 죽음의 음악이었지만,
약 60년 뒤 그의 마지막 작품들과도 연결됩니다.
1948년에 작곡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저녁노을 속에서(Im Abendrot)>의 마지막 부분에는
<죽음과 변용>의 변용 주제가 다시 나타납니다.
"이것이 혹시 죽음일까?"라는 마지막 노랫말 뒤에서
젊은 시절에 썼던 변용의 선율이 조용히 들려오는 것입니다.
또한 며느리 앨리스가 전한 일화에 따르면,
슈트라우스는 1949년 임종을 앞두고 실제 죽음의 느낌이
자신의 <죽음과 변용>에서 작곡한 것과 비슷하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는 가족이 전한 회고이므로 정확한 현장 기록이라기보다
유명한 임종 일화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상상했던 변용의 선율을
노년의 작품에서 다시 불러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작품의 연결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 Renee Fleming - Strauss' 4 Last Songs - Im abendrot
6. 자주 묻는 질문
Q1. 'Verklärung'은 왜 '천국'이 아니라 '변용'으로 번역할까요?
A1. 독일어 Verklärung은 단순히 장소를 옮긴다는 의미보다 존재가 더 밝고 높은 상태로 변화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승천'이나 '천국'으로 한정하기보다 '변용'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음악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Q2. 슈트라우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작품인가요?
A2. 그렇지 않습니다.
젊은 슈트라우스가 한 인간, 특히 이상을
Q3. 이 작품은 종교음악인가요?
A3. 교회 의식이나 성서의 특정 장면을 위한 음악은 아닙니다.
다만 죽음을 육체의 소멸로만 보지 않고 더 높은 상태로의 이동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철학적·영적인 작품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죽음과 변용>이 깊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죽음을 아름답게 꾸미기 때문이 아닙니다.
초반의 고통은 불편할 만큼 생생하고, 죽음과의 싸움도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 어둠을 충분히 통과한 뒤에야 마지막 빛이 찾아옵니다.
변용은 고통을 지워 버리는 빛이 아니라,
그 고통까지 품고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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